안정된 불안의 세계

안정된 불안의 세계

박보영 개인전

mythtake museum

2021.10.02 - 2021.10.17 | Saturday - Sunday, 1pm - 5pm








《동시대 불안과 안정》_남김형석




“나의 세계는 안정된 불안의 세계다.”

박보영은 안정과 불안을 비롯한 다양한 범주들과 그 경계들, 그리고 그 과정에 천착한다. 그가 조명하는 불안은 지극히 개인의 것이면서 동시에 사회일반의 것이다. 21세기 구성원으로서 본인이 그것을 인지하든 그렇지 않든 개인의 불안, 무기력, 우울의 현상은 그 정도의 차이일 뿐 많은 이들이 겪기 때문이다.

21세기 구성원들은 원인을 깨끗이 밝히기 어려운 불안에 깊게 빠지곤 한다. 이는 곧 불안 장애, 우울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등의 신경성 증상(혹은 정신질환)의 심화로 쉽게 이어진다. 우리는 이 현상을 누구나 경험하는 ‘현대인의 고질병’으로 부르며 자연스레 지나쳐도 될까? 21세기에는 이러한 심리적 고통이 정녕 필연적인가?


동시대인의 불안감

21세기 동시대의 사회/개인은 더 이상 동일한 목표나 뚜렷한 이상을 원하지 않는다. 반면 다양성을 추구하며 개인을 둘러싼 틀을 거부하고 자신의 길을 능동적으로 개척하려는 모습은 긍정적으로 이해된다. 또한 자유, 평화, 관용 등의 미덕을 추구하면서 그것에 장애가 되는 각종 경계들의 붕괴를 기대하곤 한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를 추구하면서 빈번하게 엄습하는 불안감을 떨쳐낼 수 없는 것은 물론, 그 정체를 이해하는 것조차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동시대에 긍정적으로 이해되는 사고방식이 어째서 영문 모를 불안감을 자아내는가.

21세기 초반의 구성원들이 추구하는 자유 속 능동성, 다양성 및 다원주의, 세계화와 소통의 긍정적 면을 여기서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에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불안감의 정체를 알기 위해서라면 동시대 21세기 사회가 어떤 토대인지 좀 더 살펴보아야한다.


⌜피로사회⌟

베를린예술대학교의 철학 및 문화학 교수인 한병철의 얇지만 유명한 저서 ⌜피로사회⌟는 동시대인의 불안감에 대한 적절한 설명을 제공한다. 포스트모던을 넘긴 동시대 사회는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 변모했는데, 이곳에서 수동성을 거부하는 주체적/능동적 개인은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이다. 세계화된 거대 자본으로 움직이는 사회에서는 타자를 착취하는 것보다 자신을 착취하는 것이 더 큰 성과를 부른다. 즉, 자기계발과 능동성은 타인의 수동성보다 더욱 효율적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완전히 망가질 때까지 자기 자신을 자발적으로 착취하는 것이다.”

과거처럼 타인을 경쟁구도에서 직접적인 적대감으로 대하지 않지만, 긍정적으로 여겨진 그들의 파편은 편집되어 자아에 충실히 투입되고 자신의 이상을 설정하게 된다. 이는 치명적인 위험 없이 진행되고 겉으로는 자유와 능동성, 다양성 존중 등의 동시대 미덕을 모두 갖춘다. 이렇게 본인을 향한 무한한 긍정의 사고방식은 피상적으로도 긍정으로 넘친다. 긍정성의 과잉은 포화되며, 고갈되는 것이다. 본인을 향한 착취는 “치명적일 수 있는 훨씬 더 큰 폭력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약간의 폭력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본인을 긍정의 포화상태로 만든다. 화살은 본인을 향해있고 작은 폭력들은 연속적이고 자발적으로 행해지며 완전히 ‘번아웃’ 될 때까지 자폐적인 성과기계로서 자신을 고갈시킨다. 더 나아가 이러한 사고방식은 현실의 자아와 이상적 자아의 간극을 느끼며, 그 원인을 자신에게서 탐색하기에 자학적 태도로 치닫는다. 이러한 나르시시즘의 대가로 타자와의 관계가 희생되고 동시대 개인은 고립에 다다른다. 한병철에 따르면 동시대의 불안, 우울, 무기력 등의 신경성 증세는 드물지 않게 자살에 이른다고 설명한다.

“모든 외적 강제에서 해방되었다고 믿는 긍정성의 사회는 파괴적 자기 강제의 덫에 걸려든다.”


불안과 안정

동시대는 규율사회로부터의 탈피를 원하고 개인을 규정할 틀을 거부하는 성격이 강하다는 것을 보았다. 즉, 동시대 미덕을 좇는 우리는 안주할 곳 없이 부유Floating할 것을 자처하다 개인은 불안에 지친다. 다시 말해, 질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의 노마디즘**의 이면에는 스스로를 옥죄는 정신적 반작용이 동반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각자 취하는 태도는 분명 다양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통되는 성향이 있는데, 즉, 불안에 피로한 이들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안정을 되찾으려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혹자는 ‘불안정 속에서 안정을 느낀다.’ 등의 생각으로 불안정을 향해 계속 전진하면서 동시에 심신의 안정을 꾀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자신을 둘러싸던 (혹은 여전히 둘러싸는) 안정적인 틀로 회귀한다. 자신이 기꺼이 떠나온 곳으로 ‘되돌아왔다’는 생각. 그리고 쉽게 인정하기 싫지만 자신을 규정하던 틀에서 느껴지는 안정감 등의 모순은 이들을 혼란에 빠뜨린다. 이렇게 회귀한 곳에서 피상적으로 느껴지는 안정감은 곧 불안감으로 다시 뒤덮이고 패배, 무기력 등을 경험하며 이로써 신경성 증상은 중첩된다.


** 질 들뢰즈의 노마디즘은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를 부정하면서 새로운 자아를 찾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을 끊임없이 변화시키는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행위로 정리될 수 있다.


박보영의 안정된 불안의 세계

동시대에 삶을 살아가는 것, 더구나 어떤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데 있어서는 들뢰즈의 노마디즘적인 태도와 그 이면의 신경증 심화를 살펴보았다. 다시 말해, 어느 특정 가치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가치를 발굴하는 창조적 주체로서의 삶에는 불안이 따라온다. 박보영 역시 이를 경험했고 노마디즘에 연이어 필연적으로 동반되는 불안에 집중한다. 즉, 박보영의 세계는 불안과 안정이 교차하는 혼성공간이다.

그의 불안은 온갖 범주들의 경계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된다. 박보영은 자신을 둘러싼 깔끔히 규정된 것들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가치를 탐구했다. 그리고 그 과정이 갖는 중요성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자신이 무너뜨린 경계들로부터 따라온 불안감은 그를 괴롭힌다. 더구나 사회적 규율에 다시금 자아를 맞춰야했을 때 찾아온 안정감에서는 모순을 경험한다. 긍정들에 따른 자아의 무한한 확장 및 불안, 소속감과 피상적인 안정, 그리고 타의로 한정되어 버린 자아에 따른 불안의 재방문. 박보영이 위치한 그 어느 곳에서도 불안이 존재했다.

이러한 불안과 피상적 안정은 동시대에 흔하지만 이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식은 하되 이를 영문 모를 불안감으로 치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박보영은 자신에게 다가온 불안과 안정을 쉽게 넘기지 않고 사소한 일상에서도 그것에 의문을 던진다. 이러한 감정들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경험적일 수밖에 없는데 박보영은 이러한 감정적 경험을 시각언어로 이야기한다. 언 듯 보면 주택가와 자연물들은 평화롭게 보인다. 그러나 빽빽하게 들어선 주택과 나무, 전면에 가득한 세부 묘사들, 선으로 구획되어 안정적으로 느껴지면서도 불안해 보이는 구도는 전혀 여유롭지 않다. 또한 흑백에서 강조된 단 하나의 색채는 언중유골과 같다. 박보영의 평면은 깔끔하고 논리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구상회화가 아니다. 그 평면 앞에서 침착하게 그것이 풍기는 불안과 안정의 혼재가 스며 나오도록 시간을 주어야한다. 회화에서 풍기는 불안과 피상적 안정, 안정 속 불안이 혼재한 일상은 21세기의 우리가 언젠가 겪어본 것임에 틀림없다. 매우 사적인 불안의 경험들은 곧 일반적이기에 공적이기도 하다. 공/사에 규정될 수 없는 동시대인의 사고방식, 그리고 동반하는 정신증은 동시대인에게 공감을 불러온다. 효율적이기에 고립을 자처하던 현대인에게 공감이라는 요소만으로도 심심치 않은 위로를 제공한다.

존재의 가장 기초적 토대는 분명 ‘나’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시간을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서 우리는 스스로 고립을 자처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자기계발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가장 효율적이며 올바른 미덕을 충족한다고 한들, 자신을 향한 정신적 착취와 고립의 연속은 존재를 축소하는 일이 되고 만다. 그런 의미에서 박보영이 동시대에 올바르다고 여겨지는 자아/존재의 (무한한) 확장의 태도와 이에 따르는 정신증세들에 천착하는 과정은 동시대에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흔히 ‘현대인의 고질병’으로 불리는 영문 모를 불안, 우울, 공허 등의 정신증세는 사실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것이며 그것이 이해된다면 정신적 고통을 일반적 경향으로 여기며 지나치는 일을 줄여볼 수도 있는 것이겠다.


남김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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